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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일기

나는 못난 남편이자 못난 아빠.

by 돌이아빠 2009. 4. 14.

Contents

    용돌이

    지난 3월 장염에 걸렸던 힘없는 용돌이

    2009년 4월 12일 일요일아침 36개월 조금 지난 용돌이가 또 집에서 다치는 사고가 생겼다.

    지난날의 피로 때문이었는지, 아내와 난 조금은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용돌이는 어느새 아침에 일어나 혼자 잠깐 놀다 아빠를 깨우러 왔다. "아빠 일어나세요, 아침이에요" 몇번 깨웠는데 난 일어나질 못했다. 아니 일어나기 싫었다고 해야겠지? 그러자 침대 안쪽에 있던 엄마를 깨우러 간다. "엄마 일어나세요, 아침이에요". 아내는 그래도 일어나는 눈치였다.

    엄마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침대를 내려가던 용돌이가 발을 헛딛었는지 얼굴부터 바닥에 떨어진 모양이다. 이번에도 직접 보지는 못했는데, 입안에서 피가 나고 얼굴에도 입술 아래쪽에 긁힌 듯한 상처가 생겼다. 깜짝 놀란 아내와 난 용돌이를 부여 안고 일단 급한대로 가제수건으로 용돌이의 입안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섞인 침을 닦아줬다. 용돌이가 나를 깨웠을때 일어만 났어도 일어나는 눈치만 보였어도 이런 사고가 생기지 않았을텐데. 잠을 자면 얼마나 더 잔다고. 정말 한심스러운 못난 아빠...

    상태를 본 아내는 아무래도 병원 응급실로 가봐야겠다고 한다. 얼른 준비해서 병원으로 향했다.
    내 마음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애꿎은 아내에게 화를 낸다. (못난 놈....)

    병원에 도착해서 바로 응급실로 안고 뛰었다. 난 그 사이 접수를 하려고 이것저것 작성을 하고는 순서를 기다리다 용돌이의 상태가 궁금하여 응급실 안으로 다시 들어가 보았다.

    내가 의사에게 들었던 말은 이렇다.

    의사: (상처를 거즈로 열심히 닦아낸 후 살펴본 후) 꿰매지 않아도 될듯도 싶구요. 이정도면 가글 잘 해주고 내일 성형외과 외래 접수해서 진료를 받아보세요. 꿰맬 수도 있는데 입안의 상처라서 쉽게 덧날 수도 있고, 열에 두셋은 염증이 생겨 다시 째기도 합니다. 가글 열심히 해 주세요.
    아내: 입술 옆에 얼굴에 난 상처는 안에서 패인 상처가 연결된거 아닌가요?
    의사: 상태를 봤을 때는 떨어질 때 다른 원인으로 긁힌것 같습니다.
    아내: 그럼 일단은 가글만 잘해주면 되는건가요?
    의사: 네. 가글만 잘 해주세요 하루에 10번 이상.

    여기까지 듣고 난 차를 빼달라고 해서 차를 빼주고 다시 응급실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내는 용돌이와 함께 응급실을 나오고 있었다.
    일단은 가글만 해주면 된다는 소리만 듣고. 차를 타고 근처 열려진 약국을 찾았으나 일요일이라 그런지 문을 연 약국을 찾을 수 없었을 뿐더러 가글에 사용하는 약 이름이 궁금하기도 하고, 병원 안에 있는 약국에 가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에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가글에 사용할 약 이름을 응급실 의사에게 듣고 병원 내 약국을 다녀온 아내의 손은 빈손.
    그곳은 접수해서 처방전을 정상으로 발급 받아야만 약을 준단다.

    다시 차를 타고 병원을 나와 쌍문역 근처로 달렸다. 달리는 내내 나는 화가 나 있는 상태(역시 못난놈...)
    다행히 쌍문역 근처에서 문을 연 약국을 발견하고 아내는 황급히 약국으로 향했다. 용돌이와 둘만의 시간...초조한 난 차 밖으로 나와 아내를 기다리며 자책하고 또 내 자신에게 화를 낸다.

    가글약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는 용돌이에게 가글 하는 법을 알려주며 옆에서 흉내를 낸다.

    아내: 용돌아 가글을 해야 하는데, 가글은 이렇게 물을 머금고 "아루아루" 하고 나서 패~ 뱉는거야.
    용돌: (어떻게 할지 몰라 하기도 하고, 아파하고 힘이 없다.)
    아내: 용돌아 엄마가 다시 해볼테니까 잘봐. 약을 이렇게 머금고 "아루아루" 하고 나서 패~ 뱉으면 되는거야. 쉽지요?
    용돌: (역시나 할 마음이 별로 없어 보인다.)
    아내: 용돌아 자 이제 같이 해보자.
    용돌: (용케 엄마가 했던 대로 어느정도 따라 한다.)

    겨우 한시름 놓고 용돌이와 조금 놀아주다 점심을 먹고 조금 쉬는데 잠이 온다. 전날 동물원을 다녀온 탓인지 아침의 응급실 사건 후에 긴장이 풀려서인지, 아니면 의사의 말만 철석 같이 믿고 정말 한시름 놓여서 긴장이 풀린 것인지 나도 모르게 자고 있다. 용돌이는 그 순간 내가 누워있는 바로 앞에 앉아서 오랫만에 틀어준 TV를 보고 있었다.

    용돌이: 아빠 일어나. 자는거 아니야. 아침이 됐는데. 용돌이랑 놀자.
    아빠: (이미 꿈나라)

    그리곤 저녁때 아내는 나에게 내일 오전에 용돌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오면 어떻겠느냐고 이야기한다.
    (아내는 월요일마다 빠질 수 없는 일이 있다.)

    아내: 여보 내일 오전에 다른데 미팅 약속 있어요?
    나: 아니 내일은 회의 있어요.
    아내: 그럼 내일 오전에 용돌이 성형외과 외래 진료좀 받고 나서 어린이집 데려다 주고 출근하면 안될까?
    나: 내일 회의 있어서 안되겠는데.
    아내: 그래도 중요한 회의 아니면 용돌이 병원에좀 데려가요 신경쓰여서 그래요.
    나: 괜찮은거 같아. 괜찮다고 했잖아.

    이런 대화를 나눈 후 서로가 좋지 않은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월요일 아침. 6시에 맞춰둔 알람이 울리고 내심 갈등한다.
    '용돌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봐야 할까?' '의사가 괜찮다고 했는데 괜찮겠지?' '그래 괜찮을거야' 라고 지레짐작하고 잠깐 안색을 살피고 출근을 했다.

    사실 36개월짜리 아이가 가글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아직도 유아용 치약을 그냥 쓰는 아이가. 한번도 가글을 해본적이 없는 아루아루 패! 이런걸 해본적이 없는 아이가 어떻게 한단 말인가!!!

    월요일 오후.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내: 지금 용돌이 데리고 병원에 왔어. 응급실로 왔어.
    나: 응급실? 왜 응급실 갔어?
    아내: 지금 접수해야 돼 끊는다.

    조금 지나 아내에게 문자가 왔다.

    "재우는 중 왜 일찍 안왔냐고 하더라"

    이 문자를 보고 가슴 한켠이 송곳으로 찌른양 아파왔다. 왜 일찍 안왔냐...왜?. 왜?

    또 얼마 후 아내에게서 온 문자 "무서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초라하고 내가 한 아이의 아빠이자 한 여자의 남편인 내가 왜 아무것도 할 수 없는것인지. 한편으로는 슬픔이 한편으로는 알지 못할 뜨것운 것이 느껴졌다. 이런게 아닌데. 이럴려고 일하는게 아닌데. 행복하려고 잘 살려고 열심히 일하는 것인데..무엇이 먼저인지. 우리가족 잘 살기 위해 일하는건데 일때문에 내 아이가 이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뒀다니...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온 아내의 문자 메시지
    "지금 끝났어. 용돌이 너무 많이 아파했어"

    마음이 정말 아팠다. 집에 도착하니 용돌이 입 안이 부어서 약간 헤 벌리고 있고 그 사이로 침이 흐른다. 울컥했다. 잘못했으면 눈물을 보일뻔 했다. 못난놈 못난아빠. 못난남편...아니 못된 아빠 못된 남편...

    용돌이와의 실갱이를 하며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고, 가글고 함께 해주고. 차마 자세히는 보지 못하고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입안에 발라줬다. 아내는 온몸이 아프단다. 국소마취를 하고 또 잠오는 약을 먹었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잠이 들었단다. 하지만, 상처를 꿰매기 위해 병원 침대에 눕힌 후 낯선 손들이 용돌이를 더듬자 용돌이는 깨어났다. 깨어난 상태에서 곪은 부분 도려내고 그 후에 상처를 꿰맸단다.

    처음 마취도 제대로 못해서 바늘로 자꾸 찔렀단다. 그 어린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그리고 잠자고 있던 아이 마취가 풀렸다고 판단했는지 다시 한번 마취를 시켰단다. (이런....그런것도 제대로 못하나?) 그리고는 곪은 부위를 절개해야 하는데 인턴인지 레지던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새파래 보이는 의사녀석 손을 떨면서 절개를 잘 못하더란다. 용돌이는 깨어나 있는 상태. 의사 한명과 아내가 우는 용돌이를 부여잡고.(아내가 얼마나 무서워 했는지 짐작이 간다. 그리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드디어 절개를 하고 피가 튀고 코에서도 피가 나오는 그 무서운 현장...아내는 엄마라는 이유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봤으리라....내가 있어야 했는데.......겨우 겨우 상처를 꿰매고 집으로 돌아왔을 아내. 그 사이 진료실 쪽에 놔둔 용돌이의 신발을 누군가 가져갔단다. 아니. 가져갈게 없어서 아이의 신발을 가져가나? 정말 어이없는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그 작은 아이의 신발 딱 보면 알텐데...

    지금 아내와 용돌이는 잠을 자고 있다. 나느 쉬이 잠이 오질 않는다....아빠로서 남편으로서 나는 낙제인가보다...
    고작 일을 핑계로 아이가 저 지경이 될때까지 아내가 그렇게 이야기 하는데도 그걸 들어주지 못하다니...아이가 다쳤는데 엄한 아내에게 화만 내는 나... 정말 한심스럽다...

    저녁에 퇴근해서 용돌이의 얼굴을 본 순간 눈물이 날뻔 했다. 그리곤 아내의 초췌해진 지친 얼굴을 보며 진한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용돌이에게 먹기 싫은 약을 억지로 먹이려고 하면서도 괜한 눈물이 글썽일뻔......
    지난 1월에 용돌이가 다쳤을 때(2009/01/06 - [육아 일기] - 늦은 밤 응급실을 다녀왔습니다.)도 욱하지 말고 잘 대처해야겠다고 생각했던건 공염불이었나....이 세상 가족보다 소중한 게 뭐가 있다고....
    나는 참으로 못난 아빠요 못난 남편이다.... 이러면서도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뜨고 난 일을 하러 출근하겠지...아픈 아이를 뒤로 하고...

    침대 때문에 두번이나 용돌이가 다쳤다. 침대를 버려버릴까?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우리 아이 성장일기]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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