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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설 명절에 대중교통 그것도 기차를 고집하는 이유

내 고향은 전라남도 광주광역시다.(광역시임에도 불구하고 전라남도를 붙이지 않으면 경기도 광주로 오인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고향을 떠났으니(실제 집을 떠난건 고3때 부터였다. 기숙사 생활을 했으니) 고향을 떠난지가 어언 몇년인지 열손가락으로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해진지 오래다.

따라서 다른 촌놈(나쁜 뜻은 절대 아니다. 오해는 말자)들처럼 나 또한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 때는 고향에 내려가야 한다.
학교 다닐때는 학교에서 제공해주는 추석 명절 귀성 버스를 이용하곤 했다.(하지만 설 명절에는 방학 기간이라 제공되지 않는다)

버스. 고속도로 전용차로도 없던 그 시절. 서해안 고속도로도 없던 그 시절. 심지어 천안-논산간 민자 고속도로도 없던 그 시절. 명절때 광주행 고속버스를 타면 고속버스가 꼭 고속도로만 이용해서 운행하지는 않았다.(물론 다른 지역은 모르겠다.)

추석 명절때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탄다고 치면, 서울 요금소까지 가는데 몇시간, 서울요금소에서 천안까지 가는데 몇시간이 걸린다. 천안을 지나면서부터는 광주로 가는 고속버스는 호남고속도로로 빠지게 되고, 부산쪽으로 가는 고속버스는 계속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지만.

호남고속도로. 왕복 2차선의 정말 같지 않은 고속도로다. 명절때면 당연스레 주차장으로 변해버리는 아주 아주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하여, 그 당시 고속버스 가시님들은 요령껏(여기서 요령껏이란 지금처럼 핸드폰이 생필품이 아닐 뿐더러 그저 가끔 나오는 라디오? 정도에 의지하는) 국도나 지방도, 혹은 여타 시도를 거쳐 광주로 광주로 가곤 했다.

물론! 추석 명절이 설 명절보다 훨씬 더 막혔음은 지금과 비슷하다고 할까? 하지만, 지금이야 버스 전용차로도 있고, 서해안 고속도로도 있으며, 천안-논산간 민자고속도로도 있어 그 막힘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16시간. 추석 명절을 고향에서 보내고 서울 강남고속버스 터미널로 이동하는데 소요된 시간이다.
말이 16시간이지 16시간 버스에 앉아 잇어 보시라. 죽음 그 자체다. 물론 혹자는 더 오랜 시간 버스에 갇혀(?) 있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암튼 좀이 쑤시는건 둘째 치고 화장실을 제대로 갈 수 있나. 배고픔은 또 어떻고.

또! 지금이야 우등고속버스라는게 있어서 그나마 자리도 편하지. 그때는 무조건 2인 1조였다.
의자를 맘대로 뒤로 젖힐 수가 있나, 그렇다고 지금처럼 위성으로 수신하는 TV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신문 읽기도 지겹고 책 읽다 보면 멀미나고.

서울에서 유럽이나 미국을 가는데도 넉넉잡고 14시간이면 가는데. 좁디 좁은 땅덩이인 한반도 그것도 광주에서 서울이라는 360여 km 를 가는데 16시간이라니...

초죽음이 되어 상경한 그때. 난 무조건 기차만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 결심은 지금까지도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물론 결혼한 후에는 철저히 기차에 더 목을 멜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기차에도 얽힌 사연이 있으니. 그 사연 또한 결혼하기 훨씬 전 사회에 갓 발을 들여 놓았을 때던가? 아니면 아직 학업중이었을 때던가?
정확히 시기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추석이나 설과 같은 명절때는 아니었고, 부모님 생신이었거나 뭐 그런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난 무궁화호 기차 좌석표를 구입해서 가지고 있었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서울역에서 출발하여(지금이야 호남선 기차는 용산에서 출발하지만, 그때는 서울역이나 영등포역에서 출발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으며 가고 있었다. 그런데 경기도 어떤 역에서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한분이 탑승을 하셨고, 마침 내가 앉은 자리 옆에 서 있게 되었다.
그 할머니는 입석표를 가지고 계신 듯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의지를 보이지 않으셨다.

혈기방자한 청년이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가 서 계시는데 그냥 있을 수는 없어, 할머니께 어디까지 가시냐고 여쭤 봤다.
할머니의 대답은 조금만 가면 내린다는 말씀이셨다. 하긴, 조금만(?) 가시니 입석표를 끊으셨겠지 라는 생각으로 흔쾌히 할머니께 내 자리를 양보했다.

아뿔싸..............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이미 알아채셨으리라. 그렇다. 광주에서 함께 내렸다...할머니와..
동방예의지국의 자손으로서 아버지에게 엄격한 교육을 받은 자식으로서 광주로 내려가는 내내 감히 할머니께 다시 자리를 돌려달라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다섯시간? 여섯시간이었나? 내내 내손에는 열차 좌석 번호가 선명한 기차표를 들고 있었지만, 내 몸은 튼튼한(?) 두 다리로 버티고 의자에 살짝 기대어 책을 읽으며 광주에 입성했다.

지금은? 지금은 이미 결혼을 했고, 다섯살난 자식도 있다. 하지만, 명절 때면 여전히 본가가 있는 광주에 내려가야 한다.
차편은? 물론 기차. 그것도 KTX만! 이용하고 있다.
이유는? 빠르다. 그리고 입석이 없다 >.<(물론 명절 때는 있긴 하지만)


좀 비싸긴 하지만, 지루한 이동 시간을 줄일 수 있고, 교통체증을 당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KTX 기차만 이용하고 있다.
그래서! 명절 기차표 예매 시즌이 되면 새벽 5시에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컴퓨터를 켠다.
그리곤 미리 적어 놓은 가차편 정보와 고객ID 등을 입력해 놓고 6시 땡 치기만을 표준시간을 알려주는 사이트를 열어 놓고 기다린다.
6시 땡! 하자마나 내 손은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니 마치 그 옛날 오락실에서 올림픽 게임을 할 때처럼 광클릭과 현란한 마우스질을 시작한다.

하지만! 요근래의 성적은 그닥 좋지 못하다. 잘되야 편도만 구해지고, 그나마도 올해는 설, 추석 모두 실패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열차대기 등록 신공과 운은 남아 있는듯 하다.
이번 추석때도 비록 예매 기간에 추석 기차표 예매에는 실패했지만, 그날 오후 2시부터 시작되는 추석 기차표 대기자 명단에 아주 빠른 클릭직과 현란한 테크닉으로 원하는 시간대에 대기자 명단 등록에 성공했고, 딩동~ 반가운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며 왕복 기차표를 모두 구했다.


다행이다. 그런데 5살 아들 녀석이 좀 더 크면 세장을 구해야 하는데 더 어려워질 것 같다.
그래도 올해 추석 명절 기차표는 구했으니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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