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균형 - 10점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도서출판 아시아

로힌턴 미스트리의 걸작 장편 소설 적절한 균형.

책의 제목인 적절한 균형은 어떻게 보면 인도라는 공간, 카스트라는 관습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의 외줄타기 삶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책은 1970년대 중 후반의 인도를 배경으로 불가촉천민인 이시바, 옴프라시, ,이들보다 높은 카스트 계층인 마음이 여리고 사람 좋은 마넥, 좋은 가문 출신으로서 젊어서 남편과 사별한 과부로 자신을 지켜가며 어떻게든 홀로 살아 보려 위태위태한 외줄을 타고 있는 디나의 이야기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적절한 균형이란 바로 이 네사람이 디나의 낡은 아파트에서 함께 살아가며 행복과 불행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며 이끌어가는 바로 그 삶을 의미하는 듯 하다.

이 책을 통해 그저 막연하게만 인식하고 있었던 인도의 카스트제도 하의 불가촉천민이라는 사람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알게 되었다.

불가촉천민 즉, 차마르 계급인 둑히는 그리고 이슬람교도 친구인 아시라프. 그리고 둑히의 두 아들 나라얀과 이시바를 통해 힌두교/이슬람교라는 종교적인 아픔을 그저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다. 아니 이야기한다기 보다는 덤덤하게 빼지도 넣지도 않게 무미건조하게 나열한다. 이슬람교와 힌두교 사이에서의 적절한 균형이란? 그 적절한 균형이 없음으로 인해 인도는 인도와 파키스탄이라는 두개의 나라로 분리가 되고 만다. 그 사이 위태 위태 했던 균형을 유지해왔던 힌두교와 이슬람교 사이는 폭력, 살인, 방화, 살육으로 그 막을 내린다. 그리고 두 종교는 두 나라로 분리되고 만다.

차마르 계급인 둑히는 그의 두 아들을 죽은 소의 가죽을 다뤄야 하는 천한 직업(아니 가업? 할 수 밖에 없는 일?)을 갖지 않도록 재봉사인 친구 아시라프에게 보낸다. 그 후 나라얀과 이시바는 재봉사라는 차마르 계급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종의 신분 상승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둑히라는 불가촉천민 계급중 하나인 차마르 계급의 둑히가 세상을 향해 외친 처음이자 마지막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이 카스트에 도전한 결과는 바로 둑히와 나라얀 가족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 그렇다 세상을 향한 외침과 재봉사라는 나름의 신분 상승이 일어나자 그 반작용으로 그들은 죽음을 당함으로써 적절한(?) 균형을 이루게 된다.

죽은 아비의 직업을 따라 재봉사가 된 옴프라시(나라얀의 아들이다)와 그의 삼촌 이시바는 국가비상사태와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점차 일감을 잃게 되고 아시라프의 조언에 따라 대도시로 떠나게된다. 그 과정에서 행복과 불행 사이를 적절하게 경험하고, 디나와 마넥이라는 운명적인 파트너를 만나게된다.

차마르 계급으로 재봉사가 된 옴프라시와 이시바, 그리고 카스트라는 신분 제도를 별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옴프라시와의 동갑내기 마넥, 상대적으로 높은 계급 집안의 딸인 미망인 디나는 신분, 성별, 나이를 초월하여 디나의 집에서 괴이한 공동생활을하게 된다. 디나의 집에서 재봉사로서 재봉일을 해주는 옴과 이시바, 그리고 그들을 부리는(돈이 필요하여) 디나, 디나의 친구 아들로서 대학을 다니는 하숙생 마넥. 그들은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다 디나의 집이라는 공간적, 상징적 장소에서 한 가족처럼 지내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가비상사태, 물질만능주의, 부정부패 등의 문제점들 속에서 많은 사고를 당하면서도 꾸역 꾸역 행복과 불행 사이의 균형을 유지해 간다.

이 상황을 이시바는 디나가 자투리 천조각들을 엇대어 만들어가던 이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다음 대목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천 한 조각을 가지고 슬프다고 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보십쇼. 이 슬픈 조각이 저희가 베란다에서 자기 시작했을 때 작업하던 행복한 헝겊 조각과 연결돼 있잖습니까. 그리고 그다음 조각은 차파티를 만들 때 작업하던 거고요. 그리고 이 보라색 비단은 저희가 매운 양념 와다 과자를 만들고 다 함께 요리를 하던 때 작업하던 거죠. 또 이 조젯 헝겊 조각은 거지 왕초가 저희를 집주인의 깡패들로부터 구해 줬을 때 작업하던 겁니다."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도서출판 아시아, 적절한 균형 본문 701페이지 중에서 발췌]

이 이불은 결국 완성되지 못하고 말았다. 어찌보면 그 완성되지 못한 이불로 적절한 균형이 무너질 것임을 암시하는 것처럼.
행복과 불행은 따로 오는 것 같지만 모든 것들은 서로 서로 이어져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단적인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들의 불편한(인도 가 보기에) 동거는 사회의 복수로 파국을 맞게된다.
국가비상사태 하에서 아파트는 강제로 퇴거 당하고, 이시바와 옴은 강제 가족계획 수술(이시바는 정관 수술, 옴은 과거 둑히의 반항을 응징했던 라지람의 추가적은 복수로 거세까지)로 인해 불구가 되어 결국 나름 행복한 대도시의 거지로 생활을 하게 된다. 마넥은? 친했던 선배의 의문의 죽음. 신부지참금이 없어 부모를 괴롭히기 싫어 자살한 세자녀, 불구이자 거지가 되어버린 옴과 이시바의 모습에 더 이상 삶을 지탱할 의지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결국은 자살을 택한다.

이 책의 저자 로힌턴 미스트리는 70년대 중, 후반의 인도의 모습을 아주 건조하게 너무나 무덤덤하게 있는 그대로를 기술해 나감으로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무미건조한 그 문체덕에 독자는 더 가슴이 아프지 않을까 한다.

적절한 균형을 읽어가면서 국가비상사태, 국가보안법, 물질지상주의,  빈부격차, 길거리 청소(공권력을 통한 거리 청소), 시궁창 나는 정치계 등의 상황을 읽으면서 바로 우리나라의 암울했던 군부독재시절의 박정희와 전두환, 그리고 이명박이 있었던 과거 그리고 지금의 현재가 떠올랐다면 과도한 상상일까?

자연은 필요없고 무조건 개발만을 하면서 가진자는 아니 아부하는 자에게는 더 큰 부를 선사했던 군부독재시절의 박정희.
삼청교육대라는 이름으로 권력의 힘으로 길거리 청소를 자행하며 자신들의 부만 챙겼던 전두환과 그 똘마니들.
자신의 맘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힘으로 밀어붙이고 삽질만 잘하면 모든 사람이 잘 살게 될 것이며, 자신에 반하는 것은 그것이 법이라도 X무시하는 이명박과 수구꼴통들(기득권들).

슬프다. 그리고 아프다.







적절한균형
2009.12.17 16:09
돌아가신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께서 보셨으면 가슴을 치고 슬퍼하며 읽었을 책이군요. 한국 사회와 적절한 균형이 그린 사회가 도대체 다를 바가 뭐가 있을까요? 조금 더 부유하고 조금 더 깨끗하고 조금 더 편리하다는 것 말고 도대체 뭐가 낫죠?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책 같습니다.

돌이아빠
2009.12.21 09:13 신고
네 맞습니다.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사회입니다.
고작 먹을게 좀더 많고, 물질적인 발전만 조금 더 한 정도의 사회? 라고 할까요?
후후파파
2009.12.18 06:15 신고
슬프다. 그리고 아프다. '적절한 균형' 이 책을 그들이 읽어도 왠지 변하지 않을것 같네요...
좋은 리뷰 잘 보고 갑니다...^^

돌이아빠
2009.12.21 09:13 신고
책을 읽으려고도 하지 않겠지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만큼만 책을 읽어도 이런 상황이 계속되지는 않을텐데요...